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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M0Okcm6NND
0.2%로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유대계 슈퍼리치 톱10은?'
2014. 7. 21. 14:32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299434.html
미국서 영향력 막강 ‘유대 자본’
수정 2019-10-19 11:23
이스라엘 정치도 ‘들었다 놨다’
올메르트 총리에 ‘뇌물’…반대파 네탄야후엔 ‘언론지원’
미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 사업가들
https://www.munhwa.com/article/11532644
독일 핍박 피해 미국으로 향한 유대인… 금융제국 뿌리가 됐다
입력 2025-09-12 09:38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833389
250년 동안 세계 흔든 유대인 가문의 비밀
22.05.09 14:38 최종업데이트22.05.09 14:38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22472.html
“금융·유통 주무르는 유대 경제력 원천 알고 싶었죠”
수정 2026-07-04 01:04
등록 2015-12-17 21:26
https://www.mk.co.kr/news/economy/4643161
유대인 재테크와 인덱스펀드
업데이트 : 2009.10.23 11:45
전 세계를 통틀어 1500만명 남짓한 유대인은 세계 인구 63억명가운데 0.24%에 불과하다. 하지만 1901년 이래 전체 노벨상 수상자 중 21%를 차지할 정도로 우수한 두뇌가 많다. 수상자 비율을 보면 경제학상 65%, 생리의학상 23%, 물리학상 22%, 화학상 11%, 문학상은 7%를 각각 차지했다.
그리고 미국 변호사 15%, 미국 의사 15%, 미국 400대 재벌 23%가 유대계라고 하는데 상위 40대 재벌에선 무려 40%를 차지한다.
금융 분야에선 더욱 돋보인다. 세계 금융을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는 로스차일드 가문(골드만삭스 UBS 등)과 JP모건 가문(모건스탠리 도이체방크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과 현 의장인 벤 버냉키도 유대계다.
유대인들이 이처럼 탁월한 경제적 두뇌와 부를 만들어 내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논의를 '돈 버는 기술', 즉 재테크로 좁혀보자.
유대인은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돈의 중요성과 관리방법을 가르친다. 수천 년에 걸쳐 내려온 탈무드 내용 중에는 저축 또는 투자에 대한 뛰어난 지혜와 교훈이 들어 있다. 몇 가지만 간추려 보자.
1. 버는 자보다는 모으는 자가 이긴다.
2. 당신 돈을 항상 토지, 주식ㆍ현물 등 상품, 현금으로 3등분해서 투자하라.
3. 돈은 돈을 낳는다.
참으로 놀라운 가르침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대인들은 특히 자산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한다. 대대손손, 자자손손 장기적으로 이런 원칙을 갖고 자본을 축적한 것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투자하고 있는 펀드와 관련해 소비자가 지불하는 직ㆍ간접 비용이 바로 돈이다. 특히 장기로 투자를 때는 더욱 그렇다. 탈무드에 나오는 '돈은 돈을 낳는다'는 잠언과 같이 장기 투자는 결국 비용과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비용이 복리효과로 인해 수익률에 미치는 효과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제 인덱스펀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 펀드는 수십 년간 쌓아온 재무 분야 학문적 업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미국과 같은 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에서조차 월스트리트의 유명 펀드매니저들에게 돈을 맡기면 비싼 위탁비용이 들더라도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재무 분야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런 믿음들과 상반되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주가 예측은 전문가에게조차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시장 평균 수준으로 수익을 추구하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게 오히려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주식중개인이나 펀드매니저 대부분이 이런 이론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지만 일부는 이러한 이론들에서 매력적인 금융사업 기회를 발견한다.
'시장포트폴리오에 분산 투자하면서 거래비용을 최소화해 복리효과를 높이는 펀드를 개발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인덱스펀드가 등장했다.
1971년에 기관투자가를 가입 대상으로 한 인덱스펀드가 세계 최초로 등장했고, 1976년에는 개인투자가를 위한 인덱스펀드가 선보였다. 이 펀드가 바로 그 유명한 '뱅가드 S&P500 펀드'다. 오늘날 이 펀드는 가입액 100조원을 넘나드는 세계 최대 펀드로 성장했다. 지난 30년간 인덱스펀드는 미국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물론 연기금ㆍ보험과 같은 기관투자가가 가장 선호하는 주식형 펀드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인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조차 인덱스펀드를 가장 우수한 금융상품으로 꼽았다. 지난 5월 버크셔해서웨이 주총 후 CNN과 인터뷰하면서 버핏은 이런 얘기를 했다.
"주식을 살 때인지 팔 때인지 누군가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주식중개인이든, TV나 신문에 등장한 누구든, 이웃이든 그 누구도 주식을 살 때인지, 팔 때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량기업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다면, 그리고 개인적 비용, 매매비용이나 운용비용을 아낀다면 30~40년 후에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깊은 진리가 담겨 있는 충고다. 아직 일확천금을 꿈꾸고 묻지마 투자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투자자라면 금과옥조로 삼을 만하다.
https://www.snua.or.kr/magazine?md=v&seqidx=10507
세계 금융 이끈 유대인 저력
‘스테이블 코인’에 관심 갖길
“청어가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부터 제 얘길 들으시면 아마 믿으셔야 할 겁니다.”
‘돈의 인문학’ 강연으로 잘 알려진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가 5월 25일 도화동 장학빌딩에서 본회 수요특강을 진행했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32년간 코트라에서 재직한 홍 교수는 전직 무역인이자 ‘돈 인문학자’. 파나마·멕시코·마드리드·밀라노 무역관장 등을 지내며 18년간 해외 7개국에서 근무했고, 그 과정에서 무역과 화폐 등에 관심을 가지고 통찰한 내용을 저술과 강의로써 알리고 있다. 이날 강의에서도 금융사를 관통하는 유대인의 저력과 오늘날 미국의 경제정책, 미래 화폐까지 하나로 꿰어 보여줬다.
홍 교수의 이야기는 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중세와 근대의 분기점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1492년입니다. 그해 스페인이 ‘기독교 왕국’임을 표방하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내쫓고, 유대인 추방령을 내리고, 신대륙을 발견했죠. 근대가 시작되는 선두에 유대인들이 있었어요.”
쫓겨난 유대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저지대, 즉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로 향했다. 농사를 짓기 힘든 저지대 국가는 청어를 잡아 소금에 절여 유럽에 내다 팔아 먹고살았다. 한자 상인에게 사서 쓰던 암염을 자신들이 살던 스페인의 값싸고 품질 좋은 천일염으로 대체하면서 유대인이 청어 산업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유대인은 무엇을 하면 유통 전체를 독점화해야 해요. 조선소를 지어 고기잡이배를 만들고, 화물선도 만들면서 역사가 바뀌었죠. 다른 나라 화물선의 3분의 1까지 운임을 줄인 이들이 유럽 화물 운송을 싹쓸이하면서 암스테르담은 물류의 도시가 됐습니다.”
운임을 줄이기 위한 유대인들의 꾀는 대단했다. 배 만드는 나무를 수입해 왔던 스칸디나비아가 갑판 넓이로 통행세를 매기는 것에 착안, 갑판이 좁은 ‘플류트선’을 만들었다. 네덜란드 갯벌에 맞춰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을 만든 것도 단가를 낮춘 ‘신의 한 수’였다. 복합 도르래를 개발해 돛 작업 하는 선원 인건비까지 대폭 줄였다. 중계 무역이 발달한 네덜란드에서 최초의 주식회사와 주식거래소, 중앙은행의 모태와 근대적 의미의 기축통화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미국의 달러 발행이 국채와 연동하게 된 이유도 유대인을 실마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양털 외에 마땅한 수출품이 없던 영국이 무역 독점을 꾀해 1651년 ‘항해 조례’를 제정하고, 반발한 네덜란드와 영국은 전쟁을 벌인다. 승리한 영국의 요구로 네덜란드 무역상들은 대거 런던으로 이동했고, 영국은 세계 무역의 중심이 된다.
궁지에 몰린 유대인들은 네덜란드 총독 빌럼 3세가 스페인과 벌이던 독립전쟁에 사활을 걸었다. 전 세계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자본을 끌어와 전쟁 채권을 사주고 군자금을 댔다. ‘돈의 힘’으로 스페인을 이긴 후, 빌럼 3세가 의회와 왕실이 갈등을 겪던 영국의 공동 왕으로 초청되면서 유대인들도 함께 영국에 옮겨온다. “빌럼 3세는 프랑스와 전쟁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유대인에게 손을 벌립니다. 유대인들은 궁리 끝에 80만 파운드를 모아서 왕에게 줬죠.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매년 8% 달라’면서요. 대신 왕실의 채무증권을 담보로 그 금액만큼의 발권력을 얻어냈어요. 이렇게 영란은행이 탄생합니다.”
‘국채를 받고 그만큼 돈을 찍어 왕실에게 주는 시스템’은 영국 식민지에도 그대로 도입돼,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영란은행을 본떠서 만들어진다. 그는 이 역사가 팬데믹 이후 미국의 강력한 재정정책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연준이 갖고 있는 국채에도 이자를 지급하는데, 연준은 이 이자를 받아 주주에게 6%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연준이 쓸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약 90%)를 다시 미국정부에 돌려줍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국채 발행을 두려워 하지 않고 강한 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겁니다.”
왜 재정정책일까? 금융권을 통해 유동성을 찍어내는 데서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인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미국 상위 1%가 미국 전체 자산의 40%를 갖고, 차상위 9%가 35% 정도를 가집니다. 문제는 하위 50%입니다. 미국 국민 절반은 갖고 있는 재산이 거의 없어요. 팬데믹이 터지면서 이 하위층의 붕괴를 막기 위해 자본주의 틀이 바뀌고 있습니다. 옛날엔 통화 정책으로, 양적 완화로 금융권을 통해 돈을 풀었다면, 이제는 재정정책으로 통화 주도권을 정부가 갖고 와서 필요한 개개인에 직접 ‘쏴주는’ 거죠. 과거 금융자본주의는 포용적 자본주의로 변화했습니다. 재정의 3대 기능인 자원 배분, 경제 안정화, 소득 재분배 중 예전엔 경제 안정화를 중요시했지만 이젠 소득 재분배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미래 화폐 시장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그는 △현 지폐 시스템 △암호화폐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스테이블 코인 네 가지가 경쟁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은행 중개를 배제한 탈중앙 예금·대출 시스템 ‘디파이(DeFi)’에 주로 쓰이고, 송금이 수월한 스테이블 코인을 꼭 관심 갖고 공부해 두라”고 조언했다. 유럽과 브릭스 국가, 산유국이 각각 디지털 화폐를 만들려는 것처럼 “화폐 시장에서도 급속한 분권화가 물밑 진행되고 있다”며 “변화에 끌려가기보다 연구해서 주도적으로 변화를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놀라운 것은 2008년 혁신적으로 등장한 비트코인조차 유대인 암호학자들이 30년간 합동 연구 끝에 개발한 산물이라는 설명이었다.
홍 교수는 “30년간 코트라에서 우리나라 제조업 수출을 지원했지만, 최종적으론 금융 산업을 포함한 서비스 산업에서 승부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금융 서비스를 창안하고 주도했던 유대인의 역사를 연구했다”고 했다. 전 10권짜리 ‘유대인 경제사’, 한 권으로 축약한 ‘유대인 이야기’가 명저로 꼽힌다. 유대인 금융 명가 로스차일드 가문에 집중해 쓴 책 ‘로스차일드 이야기’를 이날 참석자들에게 증정했다.
https://shindonga.donga.com/economy/article/all/13/6260674/1
자본 패권 흐름 뒤엔 유대인 있었다[‘돈’으로 본 세계사]
세계 금융·유통 등 장악했지만 이란 전쟁으로 달라지는 인식
입력2026-06-11 07:00:02
8세기 초 유대인, 상인·학자로 왕성한 활동
스페인, 유대인 추방으로 ‘황금알 낳는 거위’ 배 갈라
중상주의 시대는 무역·금융 귀재 ‘유대인 전성시대’
美 전체 유대인의 30%, 현재 뉴욕시 거주
이란 전쟁 승리하면 이스라엘 생존 보장될까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근세 초 유대인에 대한 유럽인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Gettyimage
2세기 초 고대 로마제국이 유대인의 정치적 기반을 해체하면서 유대인의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지만, 기독교 사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중세를 거쳐 근세 초까지 지속됐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 절대왕정과 중상주의가 확산하면서 유대인의 위상은 조금씩 변화한다. 국부(國富)가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상업과 금융에 강점을 지닌 유대인들이 점차 경제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역사 전면에 다시금 등장한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근세 초 유대인에 대한 유럽인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596년경에 쓰인 것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정 거주지역에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는 게토(ghetto)가 처음 생겨난 곳이 바로 베네치아였다. ‘베니스’는 베네치아의 영어 표현이다. 그 당시 영국에는 유대인이 없었고,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여행한 경험도 없었기에 ‘베니스의 상인’이 중세 말 무명 이탈리아 작가가 쓴 단편집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내용은 이렇다. 바사니오는 사랑하는 연인 포시아에게 청혼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친구인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나 안토니오도 무역에 전 재산을 투자한 상태라 수중에 돈이 없었기에 두 사람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찾아간다. 샤일록은 그동안 자기를 무시했던 안토니오에게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가슴에서 살 1파운드를 베어낸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바사니오는 포시아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아낸다. 하지만 안토니오가 파산하면서 샤일록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안토니오가 목숨을 잃을 위험에 빠지자 바사니오의 약혼녀 포시아가 재판관으로 변장해 법정에 등장한다. 여기서 “살은 베어 가더라도 피는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된다”라는 유명한 판결이 나온다. 이로써 안토니오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샤일록은 재산 몰수와 기독교 강제 개종 명령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네덜란드의 발흥을 이끈 유대인
이베리아반도에는 유대인이 많이 살았다. 8세기 초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하면서 북아프리카에 살던 유대인들이 같이 이주했다. 이슬람 세계에서 유대인들은 상인, 학자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어색하겠지만 중세 때 이슬람 세계에서 유대인은 전성기를 누렸다. 11세기 이후 카스티야 왕국 등 기독교 왕국들은 이베리아반도를 되찾으려는 국토회복 전쟁(레콩키스타)을 시작했다. 카스티야 왕국은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유대인을 받아들였다.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종교재판 등으로 많은 유대인이 처형되기도 했지만, 유대인들의 경제활동과 그들이 축척한 부는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반도에서 몰아내고 통일 왕국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통일과 함께 유대인들은 토사구팽 신세가 된다. 이사벨라 여왕은 이베리아반도 내 이슬람 최후의 보루였던 그라나다를 정복한 직후인 1492년 3월 31일에 유대인 추방령(알함브라 칙령)을 공표한다. 이는 여왕이 기독교 수호자로서 종교적 순수성과 가톨릭 공동체를 강화하는 한편, 유대인 재산 몰수를 통해 왕실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콜럼버스의 선단이 신대륙을 향해 에스파냐에서 출항한 때도 1492년 8월이다. 스페인의 희망과 유대인의 절망이 같은 해에 교차한 것이다. 유대인에게는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추방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유대인을 추방한 것은 이사벨라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당장은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 이득을 얻었지만 그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다.
에스파냐에서 추방된 유대인 중 일부는 이슬람 세계로 갔지만 일부는 플랑드르 지방(주로 브뤼헤와 안트베르펜)에 정착했다. 이 지역은 오늘날의 벨기에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안트베르펜은 ‘플란다스의 개’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이 작품은 원래 1872년 영국의 작가 마리아 루이즈 라메(필명 위다)가 쓴 동화인데, 여기서 플란다스(Flanders)가 바로 플랑드르의 영어 표현이다. 16세기 후반 에스파냐의 용병이 플랑드르를 공격하자, 플랑드르에서 활동하던 유대인들은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네덜란드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신교를 받아들인 나라로 다른 종교와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없었다. 근세와 더불어 상업과 무역이 중시되는 중상주의 시대로 접어들자, 무역과 금융의 귀재인 유대인들의 시대가 열렸다. 암스테르담에서는 근대 자본주의가 발아하면서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 그리고 최초의 근대식 은행과 증권거래소가 세워졌다.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경제 중심지로 부상했다.
게다가 17세기 초 발발한 30년 전쟁은 유럽의 유대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겼다. 각국은 전쟁 수행을 위해 물자와 자금이 필요했는데 유대인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근대 유대인 군수산업 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네덜란드가 1648년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중계무역과 가공무역으로 이룩한 국부(國富)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여기에 큰 역할을 한 집단이 유대인이었다. 에스파냐의 유대인 추방 이후 100년이 지나면서 유럽의 패권은 에스파냐에서 네덜란드로 넘어가고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 그리고 최초의 근대식 은행과 증권거래소가 세워졌다.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
美 전체 유대인의 30%, 뉴욕시 거주
17세기 초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를 따라 브라질로 건너간 유대인들은 브라질 헤시피(레시페)에서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했다.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를 세우고 유대인 마을을 건립했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포르투갈이 스페인으로부터 다시 독립하고 브라질을 탈환하자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은 서인도제도(카리브해 제도)로 옮겨가 사탕수수 농장을 세웠다. 일부는 북아메리카의 맨해튼섬에 가서 뉴암스테르담에 정착하고, 인디언과 모피 무역을 하는 등 무역업에 종사했다.
17세기 중반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 간 해상권 다툼이 격렬해졌다. 1665년에 대서양에서 2차 영란전쟁이 발발했다. 공식 선전포고는 1665년에 했지만 1664년에 이미 영국이 네덜란드 영토인 북아메리카의 뉴암스테르담을 공격했다. 이 전투로 맨해튼섬에 방어벽을 쌓은 것이 지금의 월가(Wall Street)의 효시다. 1667년 두 나라는 브레다 조약을 체결, 네덜란드는 향신료가 많이 나는 인도네시아의 룬섬과 남아메리카의 수리남을 가져가는 대신 뉴암스테르담을 영국에 넘긴다. 영국은 뉴암스테르담의 이름을 뉴욕으로 개명했다. 이렇게 뉴욕은 네덜란드 땅에서 영국 땅으로, 그리고 100여 년 뒤 미국의 독립과 함께 미국에 편입됐다.
현재 뉴욕시에는 미국 전체 유대인 인구의 30%가 거주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맨해튼과 브루클린에 살고 있다. 특히 맨해튼 인구의 20% 이상이 유대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유대인 인구가 2%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다. 맨해튼에만 100개 가까운 시나고그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뉴욕에서 유대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뉴욕은 미국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지이고, 이 땅을 처음 개척한 사람은 유대인이다”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영국의 유대인 이민 허용, 그리고 영국의 발전
1290년 에드워드 1세는 영국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가의 단합을 꾀했다.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 정복 전쟁을 일으켜 윌리엄 월리스를 처형한 왕으로도 유명하다.
17세기 중반 청교도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올리버 크롬웰은 국가 발전을 위해 유대인의 유입 이민을 허용한다. 350년 만에 유대인이 다시 영국에 들어온 것이다. 올리버 크롬웰은 식민지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항해조례를 공포했는데, 이 조례는 영국이 네덜란드의 독주를 막고 해상무역권을 장악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청교도혁명 이후 40여 년이 지난 1688년 명예혁명이 일어나 네덜란드의 오렌지공 윌리엄 3세가 영국 왕으로 추대된다. 네덜란드 공화국의 총독이 영국 왕이 되자, 네덜란드의 유대인들이 윌리엄을 따라 대거 영국으로 이주한다.
이와 함께 네덜란드의 선진적 금융시스템과 제도가 영국에 들어오면서 점차 유럽의 경제 중심이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바뀐다. 18세기에 들어서면 크롬웰이 조성한 시티오브런던(The City of London)은 이후 세계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이곳에서 금융 사업을 시작한 로스차일드가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전쟁 이후 세계적인 금융가로 성장한다. 유대인은 이제 세계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부상했다.
미국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유대 권력
현재 미국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유대인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스라엘 1000만 명, 미국 750만 명)이다. 미국 건립 100여 년 전에 처음 이베리아반도 출신의 세파르디 유대인이 뉴욕(뉴암스테르담)에 왔지만, 현재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이 정치적 혼란과 탄압을 피해서 대거 미국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1848년은 자유주의와 공화정을 외치면서 빈 체제에 저항하는 혁명의 불꽃이 유럽을 휩쓸었는데, 사회적 약자였던 유대인은 대거 혁명에 가담하거나 동조했다. 하지만 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유대인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했다. 금융 재벌 골드만 삭스 가문도 이때 넘어온 유대인이다. 1881년 러시아의 개혁 군주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은 또 다른 유대인 이동을 불러왔다. 암살의 배후에 유대인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폭행과 학살에 방치됐고, 이때 수많은 러시아계 유대인이 미국으로 도피했다. 마지막으로 1930~40년대 독일 나치의 유대인 탄압으로 유럽의 유대인 지식인과 예술인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해 왔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한나 아렌트, 에리히 프롬 등 이때 들어온 유대인들은 전후 미국의 경제·사회·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대 권력이 지금의 미국을 움직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서 유대인의 영향력은 막강한 것은 사실이다. 정·관계, 학계, 영화계, 예술계, 언론계 등 전 분야에서 유대인이 활약하고 있다. “이 사람도 유대인이야?”라고 놀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매년 열리는 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에서 연설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국의 정치인들이 유대인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숱한 여론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스라엘 편을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디아스포라 이후 동아시아로 이주한 유대인은 소수였지만, 19세기 이후 많은 유대인이 상하이나 홍콩으로 이주했다.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조계지가 형성되면서 유대인 상인들이 상하이로 들어왔다. 서순(Sassoon) 가문과 커두리(Kadoorie) 가문이 대표적이다.
서순 가문은 인도를 거쳐 중국에 진출한 바그다드계 유대인 가문이다. 이들은 아편 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한 뒤, 상하이에 진출해 부동산·무역·금융·호텔업 등을 일으켜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을 이뤘다. 이들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상하이가 국제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상하이의 권력자였다.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건설한 서순·커두리 가문
커두리 가문도 바그다드계로 서순 가문과 인척으로 연결되면서 성장했다. 엘리 커두리는 서순 가문 밑에서 경험을 쌓은 뒤 독립해 홍콩과 상하이에서 사업을 확장했다. 서순 가문이 중국공산당 집권 이후 동아시아를 떠난 데 반해, 커두리 가문은 홍콩에 집중했다. 커두리 가문은 지금도 CLP 홀딩스와 페닌슐라 호텔 체인 등 홍콩의 주요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과 동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폭력이 심해지면서 유대인들이 대거 상하이로 들어왔다. 이들은 시베리아나 만주를 거치거나 일본 등을 통해 상하이에 왔다. 1930년대 후반에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유대인 난민이 들어왔다. 대부분 국가에서 유대인 난민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빈의 중국 공사였던 허펑산의 도움 등으로 많은 유대인이 유럽에서 탈출해 상하이에 정착했다고 한다.
나라를 잃은 지 2000년이 지난 1948년 이스라엘은 다시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운다. 이스라엘 건립 운동의 불씨는 프랑스에서 시작된다. 1870년 프랑스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패한 뒤 한 프랑스인 스파이의 편지를 찾아내고는 유대계 프랑스 장교인 드레퓌스 대위에게 혐의를 덮어씌웠다.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범인으로 몬 것이다. 유럽의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보고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자유와 인권의 나라 프랑스에서 이런 일을 당한다면 유럽에서 유대인이 살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때 유대계 오스트리아 기자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이스라엘 국가의 건립 운동, 즉 시오니즘(Zionism)을 주창한다. 시온(Zion)은 예루살렘에 있는 언덕의 이름으로, 이는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자는 운동이었다. 헤르츨은 먼저 유대인들의 투자 이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유대인 금융 가문인 로스차일드가가 자금을 지원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는 유대인 수는 점차 늘어갔다.
1917년 영국 정부가 발표한 밸푸어 선언은 유대인 국가 설립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중요한 문서다. 위키피디아 커먼스
1917년 영국 정부가 발표한 밸푸어 선언은 유대인 국가 설립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중요한 문서다. 위키피디아 커먼스
처음에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이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문제는 영국이었다. 1917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 건국을 지지한다는 ‘밸푸어 선언’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영국은 중동에 아랍인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맥마흔 선언’으로 아랍인들이 오스만제국에 대항하도록 공작을 한 바 있다. 이중 계약을 한 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오스만제국은 지금의 튀르키예로 영토가 쪼그라들고, 나머지 영토는 영국과 프랑스가 나눠서 위임 통치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 팔레스타인의 아랍인은 60만 명, 유대인은 20만 명 수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대인들은 영국을 지원했고, 아랍인들은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새로 발족한 유엔(UN)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떠넘겼다. 1947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의 나라와 아랍인의 나라로 나누자는 유엔 결의안이 채택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결의안을 거부했지만, 유대인들은 이 결의안을 근거로 1948년 5월 14일 다비드 벤구리온(이스라엘 초대 총리)이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했다.
끝나지 않는 분쟁의 땅, 이스라엘
이스라엘 건국은 바로 전쟁으로 이어졌다. 건국 당일 이집트 전투기들이 이스라엘을 폭격했고, 이튿날 영국인이 떠난 것을 계기로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로 진격했다. 1차 중동전쟁이 터진 것이다. 그 뒤로도 2차, 3차 중동전쟁이 계속 터지면서 이스라엘 지역은 중동의 화약고가 됐다. 1973년에는 이집트-시리아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아랍 산유국들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석유를 무기화하면서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석유파동의 여파로 전 세계는 경기침체 속에 물가까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졌다. 1979년 이란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물러나고 이슬람 원리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다. 2년 반 넘게 전쟁이 계속되면서 사망자 7만 명 이상, 부상자 17만 명 이상에 이르렀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220만 명) 대부분이 집을 잃었으며, 병원·학교·상수도·전력망 등 주요 인프라 시설이 파괴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2026년 2월 미국-이란 전쟁이 터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명분으로 이란을 선제 타격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이스라엘과 주위 아랍 국가들을 공격하고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했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원유 가격은 상승하고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있다.
4월 1일 이란 테헤란 시내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뉴시스
과거와 비교할 때 유대인들의 위상은 크게 격상됐다. 이들은 세계의 금융·유통·영화산업·언론 등을 장악하고 있고, 과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세계의 여론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오랜 세월 박해와 탄압을 받았던 유대인에게 공감하던 사람들도 이번 이스라엘의 공세를 지켜보면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다시 생각하는 듯하다.
여전히 종전협상이 교착을 거듭하는 미국-이란 전쟁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이번 전쟁이 유대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중동과 세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전 인류적 관심이 집중돼 있다. 과거 데이터를 사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관점에서 역사라는 빅데이터는 유대인을 탄압한 나라와 민족은 쇠퇴한 반면, 유대인과 협력하고 공존한 세력은 번영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중동 지역 내 어떤 세력과 싸우든 지금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이번 이란과 벌인 전쟁은 어떨까. 미국과 손잡은 이스라엘이 승리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승리로 이스라엘의 생존은 더욱 확실히 보장될 수 있을까. 아니면 상처뿐인 영광에 머물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5116053 월가 유대인과 이슬람 자본
입력 2011.02.27 01:01
골드먼삭스.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이다. 유대계 자본의 상징이기도 하다. 골드먼과 삭스라는 독일계 유대인들이 세워서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시드니 와인버거, 거스 레비, 로버트 루빈 전 미 재무장관뿐 아니라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CEO) 등 전·현직 리더들이 유대인들이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미국 유대인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래서인가. 골드먼삭스는 이스라엘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초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인 로버트 맥스웰이 영국에서 일으킨 대형 금융스캔들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이처럼 유대인 색이 짙은 골드먼삭스의 역사를 뒤져보면 사뭇 이해하기 힘든 점들이 눈에 띄곤 한다. 골드먼삭스가 이슬람 자금의 대리인으로 구실한 사례들이다. 골드먼삭스는 80년대 쿠웨이트투자청(KIO)의 서방 대리인으로 구실했다. KIO가 어떤 곳인가. 바로 쿠웨이트 왕실의 자금을 굴리는 곳이다. 이슬람을 경계하는 쪽에서 보면 아주 걱정스러운 곳이다.
실제 KIO는 80년대 중반 이후 오일머니를 씨티 등 서방 은행에 예치하기보다는 좀 더 높은 수익을 위해 미국과 영국 국채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미국 50대 기업 주식을 전략적으로 매집하기도 했다. 모건스탠리 등 미국 앵글로색슨계 투자은행들은 이슬람 자금에 대한 미국인들의 경계심을 의식해 KIO를 대리하기 꺼렸다.
유대계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한 치의 망설임이나 거리낌 없었다. 수익을 최우선시했다. 골드먼삭스는 KIO의 채권과 주식 매집을 대행했다. 미 금융감독 당국의 눈길을 피해 편법으로 증권을 사들여 쿠웨이트 왕실 금고에 넣어주기도 했다.
골드먼삭스의 수익 제일주의는 영국에서도 빛을 발했다. 80년대 후반 국영 석유회사 BP의 민영화(기업공개)가 주가 하락으로 실패할 위기에 몰렸을 때다. 골드먼삭스는 영국이 해외 매각분으로 배정한 BP 주식을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바레인·아랍에미리트 등에 팔아치웠다. 한때 영국이 중동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때 지렛대로 써먹은 BP가 이슬람 세력의 수중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영국으로선 자존심 상할 노릇이었다. 보수 세력이 반발했다. 하지만 BP 지분 가운데 20% 정도가 이슬람 자본으로 채워지는 일은 막지 못했다. 이후 BP는 그 자본을 잘 활용해 세계 곳곳에서 유전을 개발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였다. 이슬람 투자자들은 BP 주가 상승의 덕을 톡톡히 봤다. 골드먼삭스는 위험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채 수수료 수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물론 민족인종문명 충돌이 엄존하는 현실 세계에서 국경을 뛰어넘는 자본이동을 순전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철없이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슬람 자금을 적극적으로 서방에 끌어들인 골드먼삭스의 전 CEO 존 와인버거(시드니 와인버거의 아들)의 말은 요즘 이슬람 금융법을 놓고 입씨름하는 사람들이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자본에는 색깔(인종)이나 좌우(정치)가 없고 수익만이 있을 뿐”이라며 “어느 나라 자본이든 수중에 들어온 뒤엔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https://dbr.donga.com/article/view/1303/article_no/5594
돈으로 죽음 피할 수 있었던 유대인 월가를 주름잡다
2013년 3월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약 0.2%에 불과한 소수민족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모진 핍박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천재적인 두뇌와 시대의 흐름을 볼 줄 아는 안목을 바탕으로 전 세계 각 분야에서 최고위층의 지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주변부에서 핵심부로 올라선 유대인들의 지혜를 통해 초경쟁 시대의 생존 전략에 대한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올해 초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각의 핵심 요직인 재무장관에 제이콥 루 백악관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이 인선은 여러 가지 화제를 낳았는데 그중 하나가 재무장관으로 3명 연속 유대인이 임명됐다는 점이다. 오바마 1기 재무장관인 티머시 가이트너와 전임 부시 대통령의 마지막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 모두 유대인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전임이었던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도 유대인인 로버트 루빈과 로런스 서머스가 재무장관직을 주고받았다.
이 정도로는 미 정부의 금융라인에서 유대인 인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설명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금융 권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금융에 관한 한 재무부보다 훨씬 더 권한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 FRB 의장은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란 소리까지 듣는 자리다.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 막강한 자리를 현재의 벤 버냉키(2006년∼)를 비롯해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 폴 볼커(1979∼1987년) 등 세 명의 유대인이 연속으로 맡고 있다. 이들의 재임기간을 모두 합하면 30년이 훌쩍 넘는다. 또한 임기 14년의 이사회 멤버 7명 중 의장인 버냉키와 차기 의장후보 1순위로 거론되는 부의장 자넷 옐렌을 포함해 유대인이 4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미국, 아니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유대인 파워를 제대로 실감케 해주는 대목이다.
경제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 몸에서 혈액의 기능과 같다고 보면 된다. 피가 구석구석 막힘없이 잘 돌아야 몸이 건강하듯 어느 사회든 돈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구석구석 잘 돌아야 경제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법이다. 경제의 생명줄 같은 금융을 유대인들이 확실하게 쥐고 있다.
재무부나 FRB 같은 정책당국뿐 아니다. 뉴욕의 월가 등 금융시장에서도 이들의 힘은 막강하다. 금융계는 유대인들의 장점 중 장점으로 꼽는 강력한 협동정신이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월가에서 가장 유대인적인 성향의 회사로 알려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백악관의 밀월관계다. 1966년 골드만삭스 입사 동기인 로버트 루빈과 스테판 프리드먼의 성장스토리를 보면 그 관계의 밀착도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 유대인인 두 사람은 모두 골드만삭스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면서 공동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로버트 루빈은 클린턴 정부 시절 경제수석과 재무장관을 지냈고, 스테판 프리드먼 역시 다음 정권인 부시 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수석을 맡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월가의 최고경영진에 오른 유대인들이 직접 행정부 재무라인의 최고책임자로 일을 했고 이들은 공직 경험을 마친 뒤 월가로 복귀한다. 이런 관행은 민주당 정부나 공화당 정부 모두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와 백악관의 밀월관계’는 많은 언론들이 흥미롭게 다룬 주제 중 하나였다. 골드만삭스의 기업문화에 대한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언론들이 내린 결론은 주로 ‘개인 플레이보다는 팀워크와 합의를 강조하고 공직에 대한 봉사를 자선행위의 하나로 생각하는 독특한 기업 체질’로 모아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기업문화에는 ‘서로 열심히 도우며 돈을 벌고, 돈을 많이 벌면 적극적으로 자선을 하라’는 유대인의 전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 골드만삭스의 성장사는 미국 유대인 기업 성장사의 전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1848년 독일 혁명 직후 미국으로 건너와 필라델피아에서 행상을 시작한 마르쿠스 골드만은 돈을 어느 정도 벌자 뉴욕으로 옮겨와 맨해튼 남쪽 파인스트리트에 약속어음을 사고파는 어음중개회사를 차린다. 1882년 회사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 사위이자 유대인인 샘 삭스와 파트너십을 맺는다. 골드만삭스라는 회사 이름은 유대인 장인과 사위의 성을 합해 만들어졌다. 이 회사는 성장 과정에서도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대인 기업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는다. 특히 메이시즈, 시어스로벅 등 유통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 백화점을 경영하는 유대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유대계 백화점들은 자금이 필요하면 반드시 골드만삭스를 통하고, 골드만삭스 또한 이들 기업에 우선적으로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골드만삭스만 그랬을까. 유대인들 사이의 긴밀하고도 끈끈한 협동은 월가에서 유대인들이 확실하게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때 월가의 황제로까지 불렸던 샌포드 와일 시티그룹 전 회장은 아직도 유대인 금융인맥의 대부로 통한다. 정부 고위직에서 일할 유대인 금융전문가를 그가 추천한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세계 최대 금융보험 그룹 AIG를 일군 모리스 그린버그 전 회장,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풀드 전 회장, 뉴욕생명보험의 사이 스턴버그 전 회장 등이 여전히 월가의 전설로 회자되는 유대인들이다.
월가 유대인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조지 소로스다. 1930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소로스는 유대인 박해를 피해 영국을 거쳐 1956년 미국으로 이민을 와 펀드매니저로 두각을 나타낸다. 1969년 1만 달러로 시작한 회사를 20여년 만에 2000만 달러가 넘는 기금을 가진 헤지펀드 회사로 성장시켰다. 연평균 35%라는 성장률은 금융계에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 덕에 소로스란 이름엔 ‘20세기 금융의 연금술사’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물론 빠른 성장과정에서 유럽이나 아시아의 통화 위기를 초래해 이 국가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한다. ‘세기의 투기꾼’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항상 검소한 생활을 하며 고국인 헝가리 등 동유럽의 민주화를 위해 막대한 돈을 기부하는 독특한 생활방식을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또한 ‘돈을 많이 벌어 자선하라’는 유대인 특유의 전통이 몸에 밴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왜 그렇게 금융에 집착하고, 또 강할까. 우선 그들의 고난의 역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유대인들이 돈벌이에 대해 뼈에 사무치게 경험한 때는 중세 봉건시대다. 성직자 귀족 농노로 구성된 철저한 기독교 중심 사회였던 중세시대에 유대인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공직은 물론 예술인과 기능인 조합인 길드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독교인들이 하지 않는 일뿐이었다. 그게 바로 대금업이었다.
당시 중세 교회법에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어떤 사회에서든 누군가가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사회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중세시대에 상업체계가 조금씩 발전하면서 그런 역할은 점점 중요해졌다. 본의 아니게 대금업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던 유대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금융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었고 많은 부를 쌓았다. 그러나 독점적 대금업은 은총이자 저주였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늘 악덕 고리 대금업자라는 비난이 따라다녔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에 나오는 샤일록이 상징적 인물이다.
소설 속의 샤일록은 당시 유대인들이 사회의 차별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돈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 수전노적인 이미지는 당시 사회의 주류였던 기독교인들에겐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못된 이방인으로 비춰졌을 뿐이다. 유대인들이 돈을 많이 벌수록 기독교인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고 심한 경우 교회나 정부는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외국으로 쫓아내곤 했다.
재산 몰수와 국외 추방은 유대인들에겐 어쩌면 숙명 같은 일이었다. 유대인들에겐 박해와 유랑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서도 샤일록의 의식 속에 있었던 것처럼 ‘돈만 있으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했다. 생사를 오가는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돈은 생명이다’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마치 유전자(DNA)처럼 유대인의 정신 속에 내재돼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로 쫓겨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돈, 그중에서도 어느 나라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국제통화가 필요했다. 그런 국제통화 중 하나가 바로 보석이다. 중세시대의 종교 탄압이나 나치의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 가운데 몸에 지니고 있던 보석을 뇌물로 주고 생명을 건진 경우가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https://www.mk.co.kr/news/culture/10640350
중국에 자본주의 심은 유대인 가문...그들은 왜 사라졌나
입력 : 2023.02.10 19:46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조너선 카우프만 지음, 최파일 옮김, 생각의힘 펴냄
https://www.leaderpia.com/news/articleView.html?idxno=361
유대인의 부자 DNA, 이유가 있다
입력 2022.05.30 16:34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12091472491
유대인이 전세계 금융을 지배한 까닭은?
입력 2012.09.14 15:19 수정 2012.09.14 15:19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1081909400003246
‘미국을 만든 거인들’ 22일 첫방…디캐프리오 제작
입력 2021-08-20 03:57
https://www.munhwa.com/article/11059826
미국유대인위원회는… 미국내 대표적 親이스라엘 단체… 로비 영향력 막강
입력 2017-11-17 14:36
美 22곳外 6대륙 10개 사무소
111년 역사… 유대인 권익보호
反유대주의 헨리포드와 전쟁서
책 출판 막고 사과까지 얻어내
미국유대인위원회(AJC)는 미국 내 가장 큰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에이펙)에 이어 미국의 대표적인 유대인 권익단체로 꼽힌다. 세계에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이스라엘과 유대인 단체들이 전 세계의 국가 및 기관들과 정치적·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뉴욕에 본사를 두고 미국 내 22개의 사무소가 있으며, 6개 대륙에 10개의 사무소를 두고 전 세계 34개 기관과 국제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1906년 11월 11일 설립돼 올해로 111주년을 맞은 AJC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권익단체다. AIPAC이 1954년에 세워져 60년을 갓 넘은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AJC는 러시아 내 유대인에 대한 학살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히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 피해를 본 유럽 내 유대인들을 돕기 위한 ‘미국유대인공동배급위원회’를 만들어 경제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
AJC의 활동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반유대주의 사상의 선봉자인 ‘자동차의 왕’이자 미 포드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와의 전쟁이다. 포드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2년 ‘국제유대인,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해 차량 유통라인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할 정도로 완고한 반유대주의자였다. AJC는 이에 대항해 책의 출판을 막고 포드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또 미국의 인종적·민족적 평등을 이끌어 내는 것이 유대인의 권익보호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AJC의 접근법이 미국 사회 전체의 인권 및 평등의 향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특히 미연방 대법원의 기념비적인 판례인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례’(Brown vs. Board of Education)를 이끌어 내는 데 일조했는데, 이 판례로 인해 미 공립학교에서는 흑인·백인 분리 수업을 중단하고 통합교육을 시작했다.
AJC는 이스라엘에 공식 사무소를 연 첫 단체로,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이 국제적 비판을 받으며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고립 상태에 빠졌을 때 국제사회에서의 활동을 통해 이스라엘이 유엔 비공식 지역단체인 ‘서유럽 및 기타 그룹’(WEOG)에 가입하는 데 협력하기도 했다. 특히 AJC는 북한의 핵 문제가 이스라엘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과 아시아지역의 경제번영을 고려해 아시아태평양연구소를 따로 두고 있기도 하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 매년 대표단이 한·중·일을 방문해 각국 정상과 회동을 하고 주요 현안에 대해 소통을 한다. 올해도 AJC의 CEO 데이비드 해리스(68)가 이끄는 대표단이 지난달 29일부터 8일간 아시아를 방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바로 직전이었다.
대표단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 등의 고위인사를 만난 뒤 우리나라의 조명균 통일부 장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임성남 외교차관,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등을 만나 대북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시라 뢰벤버그 AJC 아태연구소장은 “2014년 이후 한국에 4번째 방문한다”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북한의 핵 문제가 이스라엘에 직접 위협이 됨에 따라 한국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해리스 대표는 뉴욕에서 태어나 자란 유대인으로, 1979년부터 약 40년 동안 AJC를 위해 일해 왔다. 그는 1981년부터 약 3년간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 공산정권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위한 로비단체 ‘소비에트 유대인 지지 국제연맹’(NCSJ)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NCSJ에서 활동하며 그는 두 차례 소련 당국에 의해 구금된 적이 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 인권위원회와 프랑스 파리 의회에서 자신이 경험한 공산정권 내 사람들의 삶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은 해리스 대표를 ‘유대인의 외교장관’이라고 평가했다. 해리스 대표는 1984년 다시 AJC로 돌아와 미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부터 27년째 AJC를 이끌어 오고 있다. 그는 2008년 세계 다보스포럼에서 유대인 미국인으론 최초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49년 뉴욕 출생 △미 펜실베이니아대 학사 △영국 런던정경대 석사 및 박사 △존스홉킨스 및 옥스퍼드대 객원연구원 △미국외교협회(CFR) 멤버
https://blog.naver.com/ondal0404/221626938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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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4